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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④마음의 말
사선 케이(KEI SAZEN)
도쿄도 출생
1965-
【작품에 관하여】
요즈음, 살벌한 설레고 슬픈 소식을 들을 기회가 늘었다. 전쟁, 분쟁, 폭력, 민족의 자립과 공존, 사회를 극소화해 보아도, 약자에 대한 왕따나 가정내의 학대 등 많은 문제가 산적하고 있다. 정보화사회는 물질과 정보의 풍부함을 교환하여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나 사람과 사회와의 관계를 희박화해 왔다. 이러한 일련의 현상에는, 인간이 숙명으로 하는 시대의 전환기를 둘러싼 다양한 문제가 짙게 비추어지고 있지만, 인간의 생명 환경까지도, 생명관, 인간관, 윤리관을 유사부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지지를 받고, 향토에 의해 지켜져 개는 따뜻하게 자랐다. 서로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사람들이 하나의 덩어리가 되면 강한 인연이 재생되어야 한다. 세계와의 상호 이해를 추진하고 또 다양성의 이해를 깊게 하는 것이 인간의 공존·공생의 길을 개척해 나갈 것이다. 사는 것의 모두에 내재하면서, 결코 눈에는 볼 수 없는 「마음」. 사람은 마음을 쌓아서 이해하고 풍부한 세계를 구축해 왔다. 검은 화강암에 두 가지 지지하는 '마음'의 형태를 찾아내 인간의 진정한 힘과 부드러움을 표현했다. 아이들에게 안아, 수적으로 흔들리고, 바지의 엉덩이로 닦는 것 같은 놀이기구가 되어, 거리의 풍경에 녹아 드릴 것을 부탁한다.
당신의 "마음의 단어"는 어떤 단어입니까?
【제작】2006 요네코 조각 심포지엄
【회기】2006 년 7월 15 일~8월 26 일
【작가로부터의 메시지】
학생시절 조각심포지엄은 전성기를 맞아 한여름의 경험을 선물화에 새까맣게 선탠하여 돌아오는 선배를 부러워 보았다. 그 후, 나도 인연 있어 몇개의 심포지엄에 참가했지만, 어느 심포지엄도 기대를 배반하지 않고, 작가와의 교류나 새로운 환경에서의 제작은 마음껏 나날이었다. 그런 가운데, 내가 미술대학을 졸업한 해에 요나코 조각 심포지엄이 막을 열었다. 한 석조가의 전람회에서 이전 참가자들이 요나고의 훌륭함을 그리운 듯 말했다. 요나고에서는 이런 미소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에 대한 생각이 모이기 시작한 것은 그 때였다.
「다음에 휴지가 될 것 같다」라고 들은 것은 재작년이었을까. 자료를 보내 보았지만, 해의 세까지 음사도 없고, 포기하고 있을 때 일통의 알림이 도착했다. 개봉하자 콘페에 의한 공모의 소식이었다. 타조라도 지필인데 현장이 다른 3곳으로의 계획은 난제로 고민하지 않은 끝에 그림을 투함한 것은 마감 전날이었다.
봄의 시작 결정 통지. 현지 시찰에서는 희망하는 돌을 찾아낼 수 없고, 일말의 불안을 안고 요나고를 뒤로 한 것도 기억에 새롭다. 요나고의 무더위는 일어날 때마다 듣고 있었지만, 개막 직후부터의 예상도 하지 않는 장우에, 마르지 않는 세탁물과 하늘 모양을 원망하게 바라보는 매일이었다. 회기를 되돌아 보면, 날씨에 관계없이 제작의 손을 멈추는 사람은 없고, 오로지 진지하게, 작품에 정혼을 기울이는 4명의 체력을 그 비가 온존해 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작품의 요소나 제작 과정의 동기 부여는 환경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토모마츠 회장을 비롯하여 사무국원, 실행 위원,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의 열의나 헌신적인 지원에 추진된 것은, 작가의 마음의 안쪽에, 그리고 무엇보다 작품의 구석구석에 깊게 새겨져 있다.
요나고에서 태어난 작품은 심포지엄에 관련된 모든 사람과의 공동 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포의 모범이라고까지 말한 「요나고 방식」을 쌓아 올린 정신과 그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고 있는 「교류」의 진심이 이 거리의 보물이라고 느꼈다.
또, 최초의 산인의 일상이나 그것을 둘러싼 풍경은, 마음에 빠지는 것이었다. 어두운 아침의 회장, 조각 교실에서의 아이의 미소, 중해에 떨어지는 석양, 가나나 축제의 만등, 오야마에서 바라본 요나고의 야경, 아사히마치의 네온, 작품 설치를 기념해 오른 요나고 성지로부터의 전망 등을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무엇을 먹어도 맛있는 마을이었다.
기중, 향토사가 쪽이, 나의 조상이 돗토리에 있었던 것을 역사적 고문서로부터 찾아 줬다. 요나고가 어딘가 그리워서, 지나치다고 느낀 것은, 나의 몸의 어디에, 이 고향의 단편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틀림없다. 올 여름도 멋진 기억의 앨범이 드러났다. 힘과 용기를 준 멤버와 많은 분들의 미소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고 싶다.
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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